<선호동의보감/내경편/권1/집례>
東醫寶鑑 內景篇 卷之一
御醫忠勤貞亮 扈聖功臣 崇祿大夫 陽平君 臣許浚奉敎撰
어의 충근정량 호성공신 숭록대부 양평군 신하 허준이 하교를 받들어 짓다.
【集例】
臣이 勤按컨대 人身에 內有五藏六府하고 外有筋骨肌肉 血脈皮膚하야 以成其形而精氣神은 又爲藏府百體之主라 故로 道家之三要와 釋氏之四大가 皆謂此也라 黃庭經에 有內景之文하고 醫書에 亦有內外境象之圖라 道家는 以淸靜修養으로 爲本하고 醫門은 以藥餌鍼灸로 爲治하니 是道得其精하고 醫得其粗也라 今此書에 先以內景精氣神藏府로 爲內篇하고 次取外境頭面手足筋脈骨肉하야 爲外篇하며 又採五運六氣四象三法內傷外感諸病之證하야 列爲雜篇하고 末著湯液鍼灸하야 以盡其變하니 使病人이 開卷目擊則虛實輕重과 吉凶死生之兆가 明若水鏡하야 庶無妄治夭折之患矣라
신이 삼가 살펴보건대, 사람의 몸에는 안에 오장육부가 있고, 밖으로 근골, 기육, 혈맥, 피부가 있어서 그 형체를 이루고, 정기신은 또 장부와 백체(百體)의 주가 되므로 도가의 삼요(三要)와 불가의 사대(四大)가 모두 이를 말한다. ≪황정경≫에 내경(內景)의 문장이 있고, 의서에 역시 내외(內外)경상(境象)의 그림이 있다. 도가(道家)는 청정(淸淨)수양(修養)을 근본으로 삼고, 의문(醫門)은 약이(藥餌)와 침구(鍼灸)로 다스리니 이는 도가가 그 정(精)을 얻고 의가가 그 조(粗)를 얻은 것이다. 지금 이 책에 먼저 내경(內景), 정기신(精氣神), 장부(臟腑)로 내편(內篇)을 삼고, 다음 외경(外境), 두면, 수족, 근맥, 골육으로 외편(外篇)을 삼았으며, 또 오운육기, 사상(四象), 삼법(三法), 내상(內傷), 외감(外感) 제병(諸病)의 증을 모아서 잡편(雜篇)에 나열하고, 끝에 탕액(湯液)과 침구를 저술하여 그 변화를 다했으니, 환자가 책을 열고 눈으로 보면 허실경중과 길흉사생의 징조가 명약관화해서 망치(妄治)하거나 요절(夭折)하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古人藥方所入之材는 兩數太多하야 卒難備用이라 局方은 一劑之數尤多하니 貧寒之家가 何以辦此리오 得效方 醫學正傳은 皆以五錢爲率하니 甚爲鹵莽이라 盖一方에 只四五種則五錢可矣어니와 而至於二三十種之藥則一材僅入一二分하야 性味微小하니 焉能責效리오 惟近來古今醫鑑 萬病回春之藥은 一貼七八錢或至一兩하니 藥味全而多寡適中하야 合於今人之氣稟이라 故로 今者悉從此法하니 皆折作一貼에 庶使劑用之便易云이라
고인들의 약방에 들어가는 약재는 그 양과 수가 너무 많아 급하게 쓰기가 어렵다. ≪화제국방≫은 한 방제의 수가 특히 많으니 가난한 집에서 어찌 이것을 구비하리요. ≪세의득효방≫과 ≪의학정전≫은 모두 5돈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매우 단순하고 거칠다. 대개 한 처방에 4~5종이 있으면 5돈이 괜찮지만 20~30종의 약이 있다면 한 약재가 겨우 1~2푼이 들어가 성미가 미소(微少)하니 어찌 효과를 구하겠는가? 오직 근래의 ≪고금의감≫, ≪만병회춘≫의 약은 한 첩에 7~8돈에서 1냥의 약물이 들어가니 약미(藥味)가 온전하고 양이 적당해서 지금 사람들의 기품에 부합된다. 그러므로 지금 모두 이 법을 따랐으니 한 첩을 지음에 쓰기가 편리할 것이다.
古人云 欲學醫어든 先讀本草하야 以知藥性이로대 但本草浩繁하고 諸家議論不一而今人不識之材居其半하니 當撮取方今行用者는 只載神農本經及日華子註 東垣丹溪要語하고 且書唐藥鄕藥호대 鄕藥則書鄕名與産地及採取時月 陰陽乾正之法하니 可易備用而無遠求難得之獘矣리라
고인들이 이르기를 의술을 배우려는 사람은 먼저 본초를 읽어서 약성(藥性)을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본초가 호번하고 제가들의 의론이 한둘이 아니며 지금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약재가 반을 차지하니, 지금 취해서 쓴 것들은 단지 신농본초와 일화자주, 동원, 단계의 요점을 기재하고, 당약과 향약을 기록하였는데, 향약은 향명과 산지 및 채취시기와 말리는 법을 기록하였으니, 쓰기 편리하고, 멀리 가서 구하거나 얻기 어려웠던 폐단이 없을 것이다.
王節齋가 有言曰 東垣은 北醫也로대 羅謙甫가 傅其法以聞於江淅하고 丹溪는 南醫也로대 劉從厚가 世其學以鳴於陜西云이라하니 則醫有南北之名이 尙矣라 我國이 僻在東方이나 醫藥之道가 不絶如線하니 則我國之醫를 亦可謂之東醫也라
왕절재가 이르기를, 동원은 북쪽의 의원인데 나겸보가 그 법을 전하여 강소와 절강까지 소문이 났고, 단계는 남쪽의 의원인데 유종후가 그 학문을 이어받아 섬서까지 명성이 났다고 하였으니, 의술에 남북이라는 이름이 있은 지 오래되었다. 우리나라가 동방에 치우쳐 있지만 의약의 도가 실과 같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우리나라의 의원들을 동의(東醫)라고 할 수 있다.
鑑者는 明照萬物하야 莫逃其形이라 是以元時羅謙甫有衛生寶鑑하고 本朝龔信有古今醫鑑하니 皆以鑑爲名은 意存乎此也라 今是書披卷一覽하면 吉凶輕重이 皎如明鏡이라 故로 遂以東醫寶鑑으로 名之者는 慕古人之遺意云이니라
감(鑑)은 만물을 밝게 비추어 그 형체를 없애지 않는다. 그래서 원대(元代) 나겸보의 위생보감과 명대 공신(龔信)의 고금의감이 모두 감(鑑)이라고 이름한 것은 그 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책을 한 번 보면 길흉과 경중이 밝은 거울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의보감’이라고 이름하였으니 고인들의 뜻을 사모한 것이다.